영화 미키17 (약간의 스포일러)
나와 내가 연대하는
충동적이고 과격한 미키와 박애주의적인 미키의 대립은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다. 이는 곧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도 비슷하다. 한쪽은 현실의 벽을 깨부수려 하고, 다른 한쪽은 더 많은 이해와 포용을 원한다. 진보와 보수, 강경파와 온건파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때로는 극단적인 충돌로 치닫는다.
그러나 미키 17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이 단순히 대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힘을 합쳐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는 곧 현실에서도 극단적인 갈등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결국 ‘연대’와 ‘공존’이라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치는 늘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로운 세상일 것이다.
영화속 지도자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지도자 마셜. 그는 외계 생명체와의 공존 가능성을 고민하기보다, 먼저 ‘전쟁’을 고려한다. 이는 강경 보수 정권이 종종 평화적 해법을 무시하고 군사적 해결을 강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극우 세력은 대화와 협력보다는 대립과 군비 증강을 우선시하며, 국민들에게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심어주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미키는 외계 생명체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인간 사회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도 극우 정치 세력이 외부의 적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국민들이 직면한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 부정부패, 사회적 갈등 같은 내부적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두려움과 적대감으로 운영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거 같다. 극우 정치 세력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며, 평화보다 갈등을 조장하지만, 우리는 그 프레임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
미키들은 서로 대립하다가도 결국 연대하는 길을 찾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불필요한 대립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정치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다.
버튼이란
영화 미키 17에서 버튼은 중요한 상징으로 반복된다. 어린 미키가 실수로 눌렀던 버튼, 미키 17과 18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 버튼, 그리고 끊임없이 미키를 복제했던 시스템을 끝낼 수 있는 버튼. 이 버튼들은 단순한 기계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들은 선택이며, 변화를 일으킬 기회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버튼을 가지고 있다. 그 버튼을 누를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것이 정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곧 중요한 버튼을 눌러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투표 잘 하자. 더 이상의 긴 말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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